부엌 선반에 둔 유리 꿀병 아래쪽 절반이 하얗게 굳어 있고 위쪽은 아직 맑은 갈색으로 남아 있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9월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아침저녁 기온이 눈에 띄게 떨어지자 부엌 선반에 둔 꿀병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맑고 투명하던 꿀이 아래쪽부터 뿌옇게 흐려지더니, 며칠 지나면 숟가락이 잘 들어가지 않을 만큼 하얗고 단단하게 굳어 버린다.
이 모습을 보면 대부분 꿀이 상했거나 설탕을 섞은 가짜를 산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아까운 마음에 그대로 버리는 경우도 있고, 빨리 녹이려고 팔팔 끓는 물에 병째 담그거나 전자레인지에 돌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꿀이 묽어지기는 해도 특유의 향이 날아가고 맛이 달라진다.
하얗게 굳은 꿀은 상한 것도, 가짜도 아니다. 꿀이 원래 가지고 있는 성질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라서, 45도 정도의 따뜻한 물에 병을 담가 천천히 녹이면 사 온 날처럼 맑은 상태로 돌아온다.
기온이 내려가면 꿀이 하얗게 굳는 이유
뚜껑을 연 꿀병 안에 숟가락을 넣자 하얗게 뭉친 결정이 숟가락 끝에 걸린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꿀은 크게 포도당과 과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가운데 포도당은 온도가 내려가면 꿀 속에 녹아 있지 못하고 작은 알갱이로 뭉친다. 포도당 비율이 높은 꿀일수록 이 변화가 빨리 나타나고, 결정이 가장 잘 생기는 온도는 10~15도 사이다. 가을과 겨울 부엌 선반이나 베란다가 딱 이 범위에 들어가서, 여름 내내 멀쩡하던 꿀이 찬 바람이 불면서 굳기 시작하는 것이다.
뭉친 포도당 알갱이는 온도를 올려 주면 다시 녹아 꿀 속으로 들어간다. 다만 열을 세게 주면 알갱이가 풀리기 전에 꿀 자체가 먼저 변해서 향이 옅어지고 꿀에 든 성분도 줄어든다. 그래서 끓는 물이 아니라 손을 담갔을 때 따뜻한 정도인 45도 물에 시간을 들여 천천히 녹이는 쪽으로 손을 대야 한다.
하얗게 굳은 꿀 45도 물에 중탕으로 녹이는 방법
스테인리스 냄비에 받은 따뜻한 물에 조리용 온도계를 넣자 45도 부근을 가리킨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준비할 것은 꿀병이 절반쯤 잠기는 크기의 냄비나 대야, 그리고 45도 정도의 따뜻한 물이다. 온도계가 없다면 손을 넣었을 때 뜨겁지는 않고 목욕물보다 조금 더 따뜻한 정도면 된다. 끓인 물을 쓸 때는 찬물을 반쯤 섞어 온도를 낮춘 다음에 사용하는 것이 좋다.
꿀병은 뚜껑을 꼭 닫은 채로 물에 넣는다. 뚜껑을 열어 두면 수증기가 병 안으로 들어가 꿀에 물이 섞이고, 그러면 묽어져서 오래 두고 먹기 어려워진다. 물은 병 안의 꿀이 차 있는 높이까지만 받고, 병이 떠서 기울어지면 위에 작은 접시를 하나 놓아 눌러 준다.
뚜껑을 닫은 꿀병이 냄비 물에 절반쯤 잠겨 있고, 병이 뜨지 않도록 흰 접시를 뒤집어 위에 올려 두었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그대로 20~30분을 두면 병 가장자리부터 하얀 부분이 사라지면서 맑은 색이 돌아온다. 중간에 한 번씩 병을 꺼내 위아래로 천천히 돌려 주면 바닥에 남은 덩어리까지 고르게 녹는다. 물이 미지근해지면 더 이상 녹지 않으니 따뜻한 물로 한 번 갈아 주고, 병을 흔들었을 때 알갱이가 걸리는 느낌 없이 부드럽게 흐르면 다 된 것이다.
중탕하던 꿀병을 꺼내 기울이자 가장자리는 맑은 갈색으로 돌아왔고 가운데 아래쪽에만 하얀 부분이 남아 있다.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유리병은 한쪽만 갑자기 뜨거워지면 금이 갈 수 있으니, 냉장고에서 꺼낸 찬 꿀병이라면 상온에 30분쯤 두었다가 담근다. 다 녹은 병은 겉의 물기를 닦아 직사광선이 들지 않는 상온 자리에 뚜껑을 꼭 닫아 둔다. 냉장고는 결정이 가장 잘 생기는 온도라서 꿀을 두는 자리로는 맞지 않는다.
녹인 꿀로 꿀물을 탈 때도 펄펄 끓는 물은 쓰지 않는 편이 좋다. 70도 아래의 따뜻한 물에 타야 꿀에 든 성분이 덜 깨지고 향도 그대로 남는다. 서늘한 곳에 두면 한 번 녹인 꿀도 다시 굳을 수 있는데, 그때마다 같은 방법으로 녹여 먹으면 된다.
꿀이 하얗게 굳었다고 버릴 이유는 없으니, 따뜻한 물 한 대야만 받아 천천히 녹여 보길 권한다. 굳은 꿀을 다시 푸는 일은 제값을 주고 산 꿀을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그대로 먹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