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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은 90년만에 종묘와 다시 이어진 동물원?

spark_icon4분 지식
  • 일제강점기 동물원 격하와 율곡로 개통으로 종묘와 끊어졌던 창경궁의 역사적 수난을 짚어봅니다.
  • 서울 도심의 주요 간선축인 율곡로를 지하화하고 그 상부에 8,000㎡ 녹지와 옛 담장을 복원했습니다.
  • 12년에 걸친 입체적 토목 복원을 통해 역사적 맥락 회복과 도시 기능 유지의 공존 모델을 완성했습니다.

조선 왕실의 궁궐이었던 창경궁과 역대 왕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종묘는 본래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숲으로 이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1932년 일제가 두 공간 사이에 자동차 도로를 내면서 이 역사적 축은 90년 동안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과거의 맥락을 되살리면서도 도심 교통 흐름을 멈추지 않게 만든 해법은 단순한 철거가 아닌 입체적 토목 복원이었습니다.

훼손된 궁궐과 단절된 맥락의 무게

창경궁의 비극은 1907년 순종 황제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일제는 명정전 주변 전각 60여 채를 헐어 박물관과 동물원을 들였고, 연못 춘당지를 넓혀 뱃놀이터로 바꾼 뒤 1911년에는 이름마저 유원지를 뜻하는 '창경원'으로 격하시켰습니다.

전통 기와지붕을 얹은 창경궁 전각과 앞마당의 조감도 형식의 3D 그래픽 영상, 배경에는 숲이 보이고 화면 중앙에는 '숲으로 이어져 있었거든요.'라는 자막이 떠 있습니다.

본래 창경궁과 종묘는 숲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하나로 이어져 있던 공간이었습니다.

더 치명적인 훼손은 공간의 단절이었습니다. 1932년 창경궁과 종묘를 잇던 숲을 관통해 지금의 율곡로를 내면서 두 영역은 육교 형태의 구름다리 하나로 겨우 연결되는 처지로 전락했습니다. 1983년 동물원을 이전하고 1986년 궁궐의 형태를 다시 갖추었지만, 종묘 사이를 가로지르는 도로는 여전히 거대한 장벽으로 남아 있었습니다.

입체적 도시 재생과 궁궐 복원의 개념

문화재 복원과 도시 기능 유지는 흔히 양립하기 어려운 과제로 여겨집니다. 도심 한복판의 주요 간선도로인 율곡로를 단순히 차단하고 숲을 메우는 방식은 서울 전체에 극심한 교통 정체를 부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도입된 개념이 바로 입체적 공간 복원입니다. 지상의 지형과 역사적 구조물은 원래 높이와 모습대로 재현하되, 현대 도시가 요구하는 차량 통행 기능은 지하로 내려 상부와 하부의 쓰임새를 분리하는 공학적 접근이었습니다.

율곡로 지하화와 8,000㎡ 녹지 축의 연결

해결책의 핵심은 도로를 없애는 대신 땅 밑으로 집어넣는 역발상이었습니다. 기존 율곡로 구간에 지하 터널을 뚫어 차량 흐름을 유도하고, 터널 상부에 흙을 덮어 축구장보다 넓은 약 8,000㎡ 규모의 숲을 조성했습니다.

창경궁과 종묘 사이에 길게 이어지는 한국 전통 기와 담장의 모습.

90년 만에 다시 연결된 궁궐 담장은 끊겼던 역사적 맥락을 되살리는 상징적인 복원이 되었습니다.

지상 복원에는 철저한 고증이 뒷받침되었습니다. 일제가 철거했던 503m 길이의 궁궐 담장을 옛 자리 그대로 다시 쌓았으며, 공사 중 발굴된 옛 담장 돌과 밑돌을 30% 넘게 재사용했습니다. 일제가 설치했던 구름다리는 2012년 철거하고, 왕이 종묘를 드나들 때 이용하던 '북신문'도 제자리에 복원했습니다. 상부 숲에는 소나무와 참나무 등 우리 고유 수종 760여 그루를 심었습니다.

12년의 대공사가 남긴 시사점과 한계

2010년 첫 삽을 뜬 공사는 12년의 시간을 거쳐 2022년 7월 시민에게 개방되었습니다. 돈화문에서 원남동사거리까지 340m 길이의 궁궐 담장길이 열리며 끊어졌던 보행 축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단색의 배경에 '12년이 걸렸습니다.'라는 흰색 한글 자막이 중앙에 적혀 있는 영상 화면입니다.

창경궁과 종묘의 끊어진 맥락을 다시 잇기 위해 보낸 긴 시간입니다.

다만 완전한 복원에는 여전히 현실적인 제약이 따릅니다. 과거 철거된 전각 60여 채 중 상당수는 복원되지 못했고, 창경궁과 종묘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관람 방식 역시 관리와 보존 문제로 특정 조건에서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프로젝트는 역사적 정체성의 회복과 도시 교통 인프라의 유지가 기술적 결합을 통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 사례입니다.


FAQ

창경궁과 종묘는 왜 도로로 나뉘어 있었나요?

1932년 일제강점기에 창경궁과 종묘를 잇던 숲을 관통해 자동차 도로(현재의 율곡로)를 개설하면서 두 공간이 물리적으로 분리되었습니다.

율곡로 도로를 없애지 않고 어떻게 복원했나요?

기존 도로 구간을 지하 터널로 만들어 차량 통행을 아래로 내리고, 터널 상부에 흙을 덮어 숲과 담장을 복원하는 입체적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복원된 궁궐 담장길은 누구나 걸을 수 있나요?

돈화문부터 원남동사거리까지 이어지는 340m의 궁궐 담장길 산책로는 일반 시민에게 상시 개방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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