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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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비슷한 생각만 하는 사회, 언어라는 보이지 않는 권력

spark_icon6분 지식
  • ‘깨시’, ‘인서울’, ‘상급지’ 같은 유행 개념은 단순한 편의를 넘어 특정 가치 기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강력한 프레임으로 작동합니다.
  •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권력이 특정 인물에게 독점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도처에 퍼진 언어 속에 깃들어 있으며, 파시즘처럼 특정 방식으로 사고하도록 강제한다고 보았습니다.
  • 정형화된 언어 규칙에서 벗어나 대상을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는 문학적 메타 인식을 회복할 때 비로소 획일화된 집단적 사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를 살다 보면 일상의 사소한 영역부터 중대한 인생 결정에 이르기까지, 특정 언어와 개념이 대중의 사고를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육아 분야에서는 ‘깨어 있는 시간’을 줄인 ‘깨시’나 수유 간격을 뜻하는 ‘수유 텀’ 같은 단어가 표준 육아 지식처럼 자리 잡았습니다. 과거에는 아이가 울면 젖을 먹이고 졸려 하면 재우는 방식이 자연스러웠지만, 이제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런 단어를 접하는 순간 특정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좋은 부모가 되지 못할 것 같은 불안에 휩싸입니다. 입시 판에 들어서는 순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상위권 대학’이나 ‘인서울’, 부동산 시장에서 통용되는 ‘상급지’와 ‘하급지’, 남녀 관계를 재단하는 ‘알파남’과 ‘베타남’ 프레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언어는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사고의 방향을 강력하게 강제합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조명이 켜진 책상에 앉아 늦은 밤까지 공부에 몰두하고 있는 교실 내부 모습.

입시라는 공통된 환경 속에서 우리는 특정 가치관을 당연한 정답처럼 받아들이게 됩니다.

왜 언어의 유행과 정형화가 위험한가

유행하는 특정 개념을 쓰는 일은 단순히 편리한 소통 도구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복합적인 세계 인식을 거칠게 축소합니다.

다양한 주거 환경과 가치가 존재하는데도 ‘상급지’라는 표현을 일상적으로 쓰다 보면, 그곳에 살지 못하는 삶은 자연스럽게 결핍이나 실패로 규정되고 맙니다. 다채로운 스펙트럼으로 존재해야 할 인간의 매력이나 능력이 ‘알파남·베타남’이라는 이분법적 조어 안에서 극단적인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압력을 받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언어적 개념이 선명해질수록 사람들은 그 틀 바깥에 있는 다양한 맥락과 개별성을 상상하기 어려워집니다. 결국 사회 전체가 집단 최면에 걸린 듯 획일화된 기준을 당연한 진리처럼 공유하게 됩니다.

권력이 기거하는 진짜 장소: 롤랑 바르트의 통찰

프랑스 사상가이자 기호학자인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권력이 소수 지배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도처에 퍼져 있는 언어 자체에 깃들어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검은 배경 위에 여러 개의 아날로그 시계와 빨간색 디지털 시계가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하단에는 한글 자막이 떠 있다.

언어라는 권력은 한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시대의 숙주를 옮겨 다니며 우리 사고를 지배합니다.

흔히 권력자와 피지배자의 억압 구도를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 권력은 시공간을 넘나들며 사회 전반에 영속적으로 작동합니다. 바르트는 권력을 유지하고 퍼뜨리는 핵심 매개체를 바로 언어로 보았습니다. 그는 “파시즘이란 무언가를 말하지 못하도록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말하도록 강제하는 데 그 본질이 있다”고 날카롭게 짚었습니다. 과거 역사 속 파시즘 정권이 일상 정책에 ‘전투’나 ‘섬멸’ 같은 극단적인 군사 용어를 주입해 대중의 사고를 전시 체제로 몰아넣었듯, 현대 사회의 무비판적인 언어 사용 역시 개인에게 특정한 평가 방식을 요구하는 미시적 강제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규격화된 사고의 틀을 깨는 ‘문학적 사유’의 힘

그렇다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언어의 권력과 사고의 강제에서 어떻게 자유를 되찾을 수 있을까요? 바르트는 그 탈출구로 다름 아닌 ‘문학’을 제시합니다.

검은 배경 위에 파란색 원과 그 안에 포함된 작은 빨간색 원이 그려져 있고, 각 원 위에 '언어'와 '문학'이라는 글자가 적힌 도식입니다.

언어의 강제성에서 벗어나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문학적 사유의 힘을 생각합니다.

여기서 문학은 단순히 출판된 시나 소설 장르만을 뜻하지 않고, 언어가 정해 놓은 전형적인 규칙과 규범에서 벗어나려는 모든 시도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방탄소년단(BTS)의 노래 ‘쩔어’에서 기성세대가 청년들을 ‘3포 세대’, ‘5포 세대’로 규정하는 프레임을 두고 “그럼 난 육포가 좋으니까 6포 세대 / 언론과 어른들은 의지가 없다며 우릴 싹 주식처럼 매도해”라고 받아치는 장면은 정형화된 언어 틀을 유쾌하게 비틀어 전복하는 문학적 저항의 훌륭한 사례입니다.

학문의 언어가 대상을 ‘참과 거짓’이라는 이분법적 틀로 다룬다면, 문학의 언어는 대상을 곧바로 규정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서 묘사합니다. 이렇게 형성된 메타적 거리두기 속에서 우리는 즉각적인 가치 판단을 잠시 유예하고, 세상과 자신을 다채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유의 여백을 확보하게 됩니다.

일상의 언어를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할 때

물론 문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더라도 획일적인 기준과 이념을 선전하는 도구로 전락한다면, 그 자체로 또 다른 권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복해야 할 것은 완결된 정답에 안주하지 않고 의미의 틈새 속에서 헤매어 보는 사유의 자유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당연하게 통용되는 표현들, 혹은 일상에서 습관처럼 입에 올리는 언어 속에는 과연 어떤 사고의 강제가 숨어 있을까요? 정해진 틀을 벗어나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태도야말로 보이지 않는 언어의 감옥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입니다.


FAQ

롤랑 바르트가 말한 ‘언어의 권력’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권력이 특정 독재자나 지배 계급의 전유물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매일 사용하는 언어와 문법 체계 자체에 스며들어 사고방식과 가치 판단을 무의식중에 규정하고 강제한다는 개념입니다.

일상의 신조어나 줄임말을 사용하는 것도 사고를 제한하나요?

신조어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상급지·하급지’나 ‘알파남·베타남’처럼 대상을 협소한 이분법적 틀로 단순화하는 어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일 때 다채로운 맥락을 놓치고 경직된 사고에 갇히기 쉽습니다.

문학적 사유가 어떻게 언어의 강제에 저항하는 힘이 되나요?

문학은 정형화된 언어 규칙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대상을 한 걸음 물러서서 묘사하도록 돕습니다. 이러한 메타적 거리두기를 통해 정답을 강요하는 사회적 프레임 바깥에서 유연하게 사유할 수 있는 여백이 생겨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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