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온수로 헹군 옻칠 제기를 마른 면천으로 한 점씩 닦는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추석 상을 물리고 나면 제기를 씻어 다시 상자에 넣는 일이 남는다. 1년에 두세 번 꺼내는 그릇이라 전과 나물에서 나온 기름기가 번지르르하게 남아 있고, 음식 냄새도 배어 있다. 명절 설거지 끝에 제기까지 차례가 오면 손이 급해져서 뜨거운 물을 가득 받아 한꺼번에 담가 두기 쉽다.
기름기는 뜨거운 물에 잘 녹는다는 생각으로 수도꼭지를 온수 쪽으로 끝까지 돌리고 수압을 세게 올려 씻어내는 경우가 많은데, 제기 가운데 옻칠한 나무 그릇은 이렇게 씻을수록 상태가 나빠진다. 몇 해만 지나도 반질거리던 표면이 희끗하게 일어나고 굽 쪽부터 나무색이 드러난다. 옻칠 제기는 뜨거운 물을 아예 쓰지 않고 35도 이하의 미온수에 중성세제 한 방울만 묻혀 부드러운 천으로 닦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관리법이다.
뜨거운 물에 닦을수록 나무색이 드러나는 옻칠 제기
옻칠 표면의 일부가 옅게 벗겨져 나무색이 보이는 제기 굽 부분.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옻칠은 나무 그릇 겉면에 옻나무 수액을 여러 번 얇게 덧바른 뒤 굳힌 막이다. 종이 한 장보다 얇은 막이라서 뜨거운 물에 오래 닿으면 무르게 들뜨고, 센 물줄기가 한 자리에 계속 부딪히면 들뜬 막이 조금씩 떨어져 나간다. 한 번에 눈에 보일 만큼 벗겨지지 않아서 명절마다 조금씩 얇아지는 식으로 진행된다.
여기에 거친 수세미로 문지르는 습관이 더해지면 광이 먼저 죽고 그다음에 나무 바탕이 올라온다. 칠 막이 없어진 자리는 나무가 그대로 드러난 상태라 설거지 물을 그대로 흡수한다. 칠이 벗겨진 자리는 물이 닿자마자 번지면서 색이 짙어진다.
나무가 물을 흡수하면 마르는 동안 부피가 줄어 결을 따라 금이 가고, 그릇 안쪽과 굽에 스며든 물기는 쉽게 빠지지 않아 보관하는 사이에 곰팡이가 피고 냄새가 남는다. 그래서 옻칠 제기는 더 세게 닦는 쪽이 아니라, 칠 막에 부담을 주지 않는 온도와 힘으로 기름기만 닦아내는 쪽으로 손을 대야 한다.
옻칠 제기에 남은 기름기 미온수로 닦는 방법
미온수와 중성 주방세제, 부드러운 면천 두 장을 싱크대 옆에 준비한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준비할 것은 많지 않다. 손을 넣었을 때 미지근한 정도인 35도 이하의 물과 중성 주방세제 한 방울, 면 수건처럼 부드러운 천 두 장이면 된다. 한 장은 닦는 데 쓰고 다른 한 장은 물기를 닦는 데 쓴다. 수세미를 쓸 때는 결이 부드러운 뜨개천 수세미만 쓰고, 초록색 거친 면이 붙은 수세미는 꺼내지 않는다.
먼저 미온수를 약하게 틀어 그릇에 남은 음식 찌꺼기만 흘려보낸다. 물을 받아 담가 두면 기름기는 쉽게 빠지지만 그만큼 칠 막이 오래 물에 젖어 있게 되므로, 담그지 않고 흐르는 물에 가볍게 헹군다. 수압은 손바닥으로 받아도 따갑지 않을 만큼 낮춘다.
그다음 천에 중성세제를 한 방울 묻혀 미온수에서 가볍게 거품을 낸 뒤, 그릇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마지막에 굽까지 한 방향으로 닦는다. 한 자리를 왕복으로 문지르지 않고, 기름기가 심하면 세제를 묻힌 천으로 한 번 더 닦는 편이 낫다. 손으로 만져 미끌거림이 없으면 기름기가 다 닦인 것이다.
부드러운 천으로 옻칠 제기 안쪽을 한 방향으로 닦는 모습.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헹굼도 같은 미온수로 하고, 세제가 남지 않도록 안쪽과 굽을 한 번 더 흘려 헹군다. 그러고 나서 마른 천으로 물기를 가볍게 닦고, 직사광선이 들지 않는 통풍 잘되는 곳에 하나씩 펼쳐 놓아 자연건조한다. 굽을 위로 뒤집어 두면 그릇 안쪽과 굽 안에 고인 물기까지 마른다.
굽을 위로 향하게 뒤집어 그늘진 실내에서 말리는 옻칠 제기. / 기사 이해를 돕기 위한 생성형 이미지 |
식기세척기나 건조기, 전자레인지에는 넣지 않고 끓이지도 않는다. 뜨거운 바람과 고온이 칠 막을 들뜨게 하기 때문인데, 표백제나 염소계 세제(락스), 강산성 세제도 같은 이유로 쓰지 않는다. 담아 둘 때는 그릇 사이에 한지나 부드러운 천을 끼워 서로 긁히지 않게 하고, 평소 상에 올릴 때도 스테인리스 수저보다 나무 수저를 쓰는 것이 좋다.
명절이 끝날 때마다 미온수에 중성세제 한 방울로 닦아 그늘에서 말려 두는 습관을 들여 보길 권한다. 제기를 이렇게 챙기는 일은 해마다 같은 그릇에 음식을 올릴 수 있게 그릇의 수명을 늘리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