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태화강은 하수처리장만 증설하는 대신 빗물관과 오수관을 분리하는 '분류식 하수관'을 도시 전체에 구축해 수질을 1등급으로 끌어올렸습니다.
- 홍수를 막고자 제방을 쌓거나 숲을 베어내는 대신, 큰물이 졌을 때 물이 퍼져나갈 '홍수터'를 정원으로 비워두는 역발상 공학을 선택했습니다.
- 자연의 물리적 법칙을 힘으로 억누르지 않고, 땅 밑은 파헤치고 땅 위는 비워둠으로써 오늘날의 국가정원을 탄생시켰습니다.

1962년 대한민국 첫 특정 공업지구로 지정된 울산의 태화강은 한때 공장조차 써먹지 못하던 죽은 강이었습니다. 1996년 당시 태화강의 생수학적 산소 요구량(BOD)은 리터당 11.3mg으로, 3등급 기준조차 아득히 뛰어넘어 물고기가 떼로 떠오르던 시기였습니다.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똥강'이라 불리던 이 하천이 어떻게 대한민국 제2호 국가정원으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요? 답은 단순한 수질 정화 사업이 아니라, 하천을 대하는 구조적 발상의 전환에 있었습니다.
공학적 관점에서 태화강의 반전은 딱 두 가지 조치로 요약됩니다. 하나는 도시 전체의 땅을 파헤쳐 관을 새로 깐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강변 땅에 절대로 손을 대지 않고 비워둔 것입니다. 자연의 법칙을 억누르지 않고 역이용한 이 공학적 메커니즘을 차근차근 짚어보겠습니다.
왜 하수처리장을 늘려도 강은 깨끗해지지 않았을까?
수질 오염의 원인이 생활하수와 공장 폐수라는 점은 명확했습니다. 그렇다면 하수처리장 용량을 키우면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을까요? 진짜 문제는 처리장 건물이 아니라 땅속에 파묻힌 하수관의 구조에 있었습니다.
과거 도시 하수관은 빗물(우수)과 집에서 나오는 더러운 물(오수)이 단 하나의 관으로 함께 흐르는 합류식 하수관이었습니다. 맑은 날에는 오수가 하수처리장으로 얌전히 흘러가니 문제가 없습니다. 진짜 문제는 비가 오는 날이었습니다. 빗물이 관으로 쏟아져 들어오면 처리장 용량을 초과하게 되고, 결국 오수가 섞인 더러운 물이 대량으로 강에 유입됩니다. 당시 태화강 하류 배수 터널에서만 매일 5,000톤가량의 생활하수가 빗물과 함께 그대로 강으로 흘러들었습니다.
처리장을 아무리 크게 지어도 큰비 한 번이면 도로 아미타불이 되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했던 셈입니다.
비가 오면 하수 처리장의 용량이 초과되어 오수가 정화되지 않은 채 그대로 강으로 흘러나가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분류식 하수관'과 '홍수터'의 명확한 원리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도입된 공학적 개념이 바로 분류식 하수관입니다. 빗물관과 오수관을 아예 두 개로 쪼개어, 빗물은 강으로 바로 보내고 오수는 비가 오든 오지 않든 오직 처리장으로만 가도록 통제하는 방식입니다. 울산시는 1995년부터 2010년까지 총 1,595억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해 301km가 넘는 관을 깔았고, 민간 자본 1,810억 원을 추가로 유치하며 도시 전체의 관을 바꿨습니다.
그 결과 1996년 11.3mg/L이던 BOD 수치는 2007년부터 2.0mg/L 이하의 1등급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현재 울산은 전국 17개 시도 중 하수관을 100% 분류식으로 전환한 유일한 도시입니다.
수질을 잡은 뒤에는 강변의 물리적 구조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두 번째 과제가 찾아왔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핵심 개념이 바로 홍수터(Flood Plain)입니다. 강에는 물이 흐르는 물길뿐만 아니라, 집중호우로 물이 갑자기 불어났을 때 잠시 퍼져나갈 수 있는 비상 공간이 필수적입니다. 이 자리를 억지로 제방으로 막아 개발하는 대신 자연스러운 물그릇으로 비워두는 것이 홍수터 설계의 핵심입니다.
흔히 저지르는 오해: 제방을 쌓고 나무를 베어야 홍수를 막는다?
많은 이들이 홍수를 막으려면 강변의 나무를 싹 베어내고 높은 콘크리트 제방을 쌓아 물을 신속히 밀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1987년 정부의 하천 정비 계획에는 태화강변의 십리대숲을 전량 伐採(벌채)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하천 구역 내에 1m가 넘는 나무를 두지 못하게 했던 당시 하천법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십리대숲은 일제강점기 홍수로 논밭이 망가지는 것을 막고자 주민들이 직접 조성한 방재 숲이었습니다. 홍수를 막으려고 심은 숲을, 홍수를 막는다는 이유로 베어내라는 역설이 벌어진 셈입니다. 시민들은 수리수문학적 심포지엄을 열어 대숲이 홍수위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사실을 정량적으로 입증했고, 결국 1997년 하천법 시행령 개정을 이끌어내며 숲을 지켜냈습니다.
홍수를 막기 위해 강변에 대나무를 심었던 옛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더 큰 싸움은 2001년 태화들판 제방 건설 계획이었습니다. 태화들을 막아 제방을 쌓고 택지로 개발하겠다는 정부안에 맞서 공학자들이 수리 모형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결론은 명확했습니다. 제방을 쌓아 물이 퍼질 공간(홍수터)을 없애버리면, 밀려난 수위 탓에 오히려 상류 지역이 100년 이내에 심각한 침수를 입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건설교통부가 13억 원을 들여 재실시한 모형 실험에서도 똑같은 결론이 나오면서 택지 개발 계획은 전면 철회되었습니다.
땅을 파서 수질을 잡고, 땅을 비워 정원을 만든 태화강
콘크리트 수로를 만들어 물을 강제로 밀어내는 방식 대신, 태화강은 물의 자리를 지켜주는 역발상을 선택했습니다. 평소에는 시민들이 산책하고 즐기는 정원으로 활용하다가, 큰비가 오면 물이 마음껏 들어왔다 나가는 자연스러운 홍수터로 남겨둔 것입니다.
2004년 생태도시 선언 이후 총 6,584억 원의 예산과 20년의 세월이 투입되었습니다. 그 결과 어류는 32종에서 73종으로, 조류는 86종에서 146종으로 늘어났고 수달과 연어가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2019년 7월 12일, 84만㎡ 규모의 태화강은 대한민국 제2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강변 둔치를 콘크리트로 덮지 않고 물을 머금는 공간으로 비워둔 덕분에 홍수를 자연스럽게 견뎌냅니다.
지금도 태화교 수위가 4.2m를 넘어가면 태화강 국가정원은 통째로 물에 잠깁니다. 2020년 태풍 하이선 때도 정원 전체가 물밑으로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는 공학적 하자나 고장이 아닙니다. 이 땅이 원래부터 물을 받아두도록 설계된 그릇이기 때문입니다.
현대 도시공학과 하천 관리가 주는 시사점
태화강의 부활은 치수(治水)와 환경 정화에 있어 매우 명쾌한 공학적 시사점을 안겨줍니다. 첫째, 수질 오염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려면 눈에 보이는 하수처리장 증설보다 토목 기반의 분류식 관로 정비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둘째, 자연의 거대한 힘을 콘크리트 제방으로 무작정 막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물이 들어올 자리를 비워두는 홍수터 개념의 정원화는 도시 방재와 시민 복지를 동시에 달성하는 정교한 역발상 구조입니다. 2028년 국제정원박람회를 앞둔 태화강은 단순한 풍경의 미학이 아닌, 물리적 한계를 인정한 공학적 미학이 만든 유산입니다.
결국 기술이란 자연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숨 쉴 공간을 정확히 비워두는 데서 완성됩니다. 공장 폐수로 죽어가던 강이 국가정원으로 탈바꿈한 역사적 반전은 바로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FAQ
하수처리장만 크게 지으면 수질 오염이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빗물과 오수가 단일 관으로 흐르는 '합류식 하수관' 구조에서는 비가 올 때 유량이 하수처리장 용량을 넘어 오수가 섞인 물이 강으로 직접 흘러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관 자체를 빗물용과 오수용으로 분리하는 '분류식 하수관' 공사가 필수적입니다.
홍수터(Flood Plain)를 제방으로 막아 개발하면 어떤 문제가 생기나요?
물이 갑자기 불어났을 때 받아줄 유휴 공간(홍수터)이 사라지면, 수위가 급격히 높아져 제방 안쪽이나 하천 상류 지역에 더 큰 침수 피해를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태화강 국가정원이 비가 오면 물에 잠기는 것이 정상인가요?
네, 정상이자 의도된 설계입니다. 태화강 국가정원은 평소에 시민 공원으로 활용되지만, 집중호우 시에는 물을 받아두는 홍수터 역할을 수행하도록 비워둔 공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