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 8학군의 획일적 교육 환경 대신 경기도 광주 산속 마을에 '지렁이' 컨셉의 단독주택을 지어 이주한 건축가 가족의 16년 차 삶을 조명합니다.
- 대문 없는 돌담, 순환식 실내 구조, 땅속 지하방과 구름다리 등 입체적 공간 설계는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우고 가족의 정서적 유대를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 16년이 지나 자녀들이 예술가로 성장한 후에도 집은 필로티 쉼터와 부부의 새로운 아지트로 변모하며 유통기한 없는 삶의 터전이 되고 있습니다.

획일화된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아이들의 자유와 삶의 서사를 중심에 두고 집을 지은 한 건축가 가족의 16년 차 단독주택 실험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강남 8학군과 입시 경쟁의 궤적을 벗어나 자연 속 맞춤형 공간을 택한 이들의 삶은, 주택이 단순한 자산이 아니라 가족의 시간과 정서적 유대를 담아내는 지속 가능한 그릇임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강남 8학군을 떠나 산속 마을에 지은 '지렁이 집'
강남과 분당의 익숙한 교육 환경을 뒤로하고 경기도 광주 퇴촌의 대안학교 마을 초입에 세워진 이 집은 땅의 기운을 살리는 지렁이를 형상화한 독특한 단독주택입니다. 경북 안동에서 자라 중학교 때 강남 8학군으로 유학을 왔던 건축가 Kim Won-gi 씨는, "강남 다니면서 행복했어?"라는 아내의 질문에 단칼에 "아니"라고 답하며 남들과 똑같은 입시 경쟁 대신 아이들의 행복을 선택했습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고밀도 목재 패널과 푸른 징크 외장재가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용 비늘처럼 보이는 파격적인 사선과 외관은 대지를 비옥하게 만드는 미물인 지렁이에서 착안했습니다. 건축가가 땅을 깎고 상처를 내는 과정 속에서도 자연에 긍정적인 온기를 불어넣겠다는 건축 철학을 담아낸 것입니다.
경사진 땅의 지형을 살려 지렁이를 형상화한 독특한 단독주택을 설계한 건축가 부부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획일적 주거 형태를 넘어 가족의 서사를 만드는 공간
아파트 중심의 정형화된 주거 공간이 줄지 못하는 자유로운 동선과 정서적 안정감이 아이들의 창의성과 가족 간의 유대감을 어떻게 바꾸는지 입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 초입부터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낮은 곡선 돌담이 반겨주며, 대문이 없는 개방적인 입구는 집이 주는 따뜻한 촉감을 몸소 느끼게 합니다.
아이들의 일상과 추억을 담기 위해 담장을 없애고 곡선으로 설계한 이 집에서, 건축주 가족은 어떤 삶의 즐거움을 찾았을까요?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막힌 벽 대신 입체적으로 연결된 순환식 구조가 펼쳐집니다. 높은 층고와 단차를 둔 주방과 거실은 아이들에게 거대한 놀이터이자 잡기 놀이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획일적인 사각형 방에서 벗어나 공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경험은 아이들에게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넓은 시야를 안겨주었습니다.
아이의 눈높이와 입체적 동선을 반영한 맞춤형 설계
건축가 아빠 Kim Won-gi 씨가 아이들의 촉감과 경험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문 없는 돌담과 순환식 실내 구조, 독립적 배치를 직접 설계에 반영한 결과입니다. 특히 사춘기를 맞이했던 자녀들의 공간인 2층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방을 양 끝으로 떨어뜨려 배치를 결정했습니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각자 전용 테라스를 갖게 한 배려는 자녀들을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한 아빠의 세심한 고민이었습니다.
세월의 흔적과 가족이 함께 보낸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 따스함을 더하는 집의 마루입니다.
아내를 향한 다정한 배려도 집안 구석구석 숨어있습니다. 안방 계단을 따라 1.2m 아래로 내려가면 땅속에 3분의 1쯤 파묻힌 호젓한 지하 아지트가 나타납니다. 명상과 독서를 좋아하는 아내가 아침 햇살과 남쪽 화단의 꽃을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창문의 위치까지 치밀하게 계산해 설계했습니다.
예술가로 자란 자녀들과 부부의 삶이 공존하는 행복 공장
16년의 세월이 흐르며 아이들은 싱어송라이터와 화가라는 자신만의 꿈을 키워냈고, 집은 부부만을 위한 새로운 아지트이자 동네 사랑방으로 끊임없이 변모하고 있습니다. 높은 천장과 탁 트인 복도에서 긴 종이를 굴려가며 그림을 그리던 둘째 딸 Kim Na-hyun 씨는 이 집을 팔지 말자고 결사반대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습니다. 주택이 준 상상력의 밑거름 덕분에 첫째 딸은 대중음악상 신인상을 받은 뮤지션으로 성장했습니다.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는 다리는 비 오는 날에도 자연의 감각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이 집만의 특별한 안식처입니다.
아이들이 자라 집을 비운 자리에는 부부의 새로운 일상이 채워집니다. 거실 한편은 아빠의 오디오 음악 감상실이 되었고, 거실과 연결된 구름다리를 건너면 나타나는 오두막은 이제 부부만의 아늑한 데이트 장소가 되었습니다. 16년 전 아이들과 함께 심었던 손목만 한 벚나무가 집을 넘어서는 큰 숲이 되는 동안, 집 역시 나이 들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표정을 지어 보입니다.
집의 유통기한을 결정짓는 가족의 추억과 공공성의 가치
건축이 개인의 소유를 넘어 이웃과 나누는 쉼터이자 세대를 이어 유통기한 없이 지속되는 공간으로 남을 수 있을지 주목해야 합니다. 마을 초입에 위치한 이 집은 거실 아래 필로티 공간을 활용해 '올챙이 쉼터'라는 이웃 사랑방을 만들었습니다. 등하굣길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잠시 쉬어가는 정자 역할을 하며, 매일 아침 아이들의 제잘거리는 웃음소리가 집에 생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집과 함께 세월을 보내며 가족의 흔적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공간은 단순한 주거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편리함과 실용성만을 잣대로 삼는 도심 아파트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가치입니다. 세월의 때가 묻은 마루와 기둥 위의 낙서, 계단마다 쌓인 이야기들이 살아있는 한 이 집의 유통기한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에게도 오랜 시간이 흘러도 가족의 온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참된 집이 있나요?
FAQ
건축가가 집의 컨셉을 '지렁이'로 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땅속을 다니며 토양을 기름지게 만드는 지렁이처럼, 인위적으로 땅을 훼손하기보다 대지에 긍정적인 생명력과 온기를 불어넣는 집을 짓겠다는 건축 철학을 담았기 때문입니다.
아파트를 떠나 단독주택을 지으면서 아이들 공간에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무엇인가요?
낮은 곡선 돌담으로 촉감을 주고, 높은 층고와 순환식 동선으로 마음껏 달릴 수 있게 했으며, 2층 방들은 충분한 거리와 개별 테라스를 두어 자녀의 사생활과 개성을 존중했습니다.
16년이 지난 지금 이 집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나요?
자녀들이 독립하거나 성인이 된 후, 아이들의 장난감이 있던 거실은 아빠의 음악 감상 공간으로, 구름다리 오두막은 부부의 비밀 기지로 변모했으며 필로티 하부는 여전히 동네 아이들의 쉼터로 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