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년 전 서울 아파트를 팔고 포천 깡촌에 지은 중목구조 한옥이 자식들에게 대체 불가능한 고향이자 보금자리로 남았습니다.
- 둘째 딸이 주도한 리모델링에서 기둥과 주방은 새로 단장했지만, 외풍 심한 홑문 유리창과 자개농 등 유년의 흔적은 그대로 보존했습니다.
- 부동산 가치와 효율만을 추구하는 시대 속에서 오랜 시간과 가족의 서사를 품어낸 집이 주는 정서적 무게를 보여줍니다.

31년 전, 남들은 시골 논을 팔아 서울 아파트를 사들이던 시절에 거꾸로 서울 아파트를 처분하고 깡촌 논밭으로 향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경기도 포천시 광릉숲 인근, 가로등조차 없고 밤이면 반딧불이가 날아들던 동네에 제1호 주택을 지었던 서른일곱의 남편과 서른셋의 아내 이야기입니다. 철없다거나 후회할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오직 아이들을 자연 속에서 키우겠다는 신념 하나로 땅을 메워 둥지를 틀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주변 생태보존 지역의 규제가 완화되고 새로운 건물과 도로가 들어서는 동안, 이 집은 31년 전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며 동네의 터주대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된 삼 남매는 부모님을 향해 "이 집은 절대로 팔면 안 된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남들이 말하던 부동산 가치보다 훨씬 더 크고 귀한 결실이 이 집에 담기게 된 것입니다.
31년의 세월이 켜켜이 쌓인 이 집은 울창한 정원 덕분에 마치 숲속 비밀 공간처럼 숨어 있습니다.
왜 지금 이것이 중요한가
현대 사회에서 집은 흔히 환금성 높은 자산이나 투자 대상으로만 소비되곤 합니다. 효율과 단열, 편리함이 최우선 기준이 되면서 오래된 주택은 빠르게 허물어지고 새로 지어지는 것이 당연해졌습니다. 그런데 이 포천 한옥은 편리함과 단열을 일부 포기하더라도 집이 가진 시간과 서사를 지키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손님들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도록 넉넉하게 지었던 거실은 가족에게 소중한 추억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 집은 김포공항 팔각정을 지은 장인들을 수소문해 지은 중목구조 한옥으로, 붉은 진흙을 구워 만든 오지기와를 얹어 고풍스러운 멋을 자랑합니다. 집의 중심에는 최대 30명까지 모일 수 있는 넓은 좌식 대청마루 거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30여 년의 세월 동안 온 가족이 모이고 아이들이 뒹굴며 자라난 이 넓은 거실은, 단순한 건축적 공간을 넘어 가족의 역사가 축적된 정서적 거점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이 흐름을 만드는가
30년이 넘는 세월 앞에 목조주택의 기둥과 바닥이 낡고 부식되자, 부모님의 노후를 위해 건축을 전공한 둘째 딸이 리모델링에 나섰습니다. 손볼 곳이 많았지만 공사의 핵심 원칙은 분명했습니다. 집의 정체성과 옛 추억의 흔적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고치는 것이었습니다.
30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간직한 창틀은 이 집이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보여줍니다.
주방은 벽체를 털어내 부식된 기둥만 남기고 개방감을 살렸으며, 마릇바닥도 새 마룻장으로 교체했습니다. 하지만 길게 이어진 복도만큼은 30년 전 마룻장 그대로를 남겨 두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이들이 씽씽이를 타고 달리며 양초칠을 하던 그 감성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단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창문을 교체하고 싶었지만, 집의 옛 모습을 지키기로 한 부부의 선택에는 남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특히 겨울철 외풍에 취약한 얇은 홑문 유리창을 현대식 시스템 창호로 바꾸지 않은 결정은 이 집의 철학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창을 바꾸면 집의 분위기와 온기가 사라진다는 이유로 단열은 포기하고 옛 창호를 유지하기로 한 것입니다. 겨울의 추위는 한 철 참아내면 그만이지만, 30년 간 스며든 집의 분위기는 한 번 잃으면 다시 되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귀한 자개장은 오랜 시간의 서사가 쌓인 이 집과 어우러져 특별한 온기를 전합니다.
안방에 자리 잡은 60년 넘은 어머니의 자개농과, 30년 전 처음 지을 때 말린 꽃잎과 나뭇잎을 붙여 만든 서재의 닥지 한 장조차 손대지 않았습니다. 집 구석구석을 가족 박물관의 전시품처럼 소중히 보존하고 있는 셈입니다.
누가 영향받으며 실무/삶에서 무엇이 바뀌나
이 집에서 자란 삼 남매는 이 공간을 자신들의 영혼이 자라난 고향이자 인생 최고의 행운으로 여깁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첫째 딸은 한국에 돌아올 때마다 옛 모습 그대로 맞이해 주는 집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깊은 든든함을 느낍니다. 이제는 어린 딸과 함께 툇마루에 앉아 동일한 추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자라온 터전이 주는 안정감은 세대를 넘어 후손에게도 귀한 유산이 되어줍니다.
새롭게 가족의 일원이 될 예비 사위 역시 변하지 않는 보금자리가 주는 특별한 노스탤지어를 함께 경험합니다. 텃밭을 일구고 오일스텐을 바르며 집의 역사에 동참하는 과정 속에서, 공간이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강력한 끈이 됨을 깨닫게 됩니다. 빠른 변화 속에서 갈피를 잡기 힘든 현대인들에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변함없는 물리적·정서적 고향이 존재한다는 것은 삶의 태도 자체를 굳건하게 만들어 줍니다.
앞으로 무엇을 주시해야 하나
'집에도 유통기한이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해 이 포천 한옥은 시간의 켜가 쌓일수록 가치가 더욱 깊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건축물로서의 수명은 수선과 관리를 통해 연장할 수 있지만, 그 속에 담긴 가족의 서사와 정성은 세월이 흘러야만 완성되는 독보적인 자산입니다.
앞으로 30년을 넘어 60년, 그 이상을 바라보는 이 집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세대 간 전승되는 삶의 터전으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효율과 속도만을 좇는 현대의 집짓기 문화 속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풍요로워지는 집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금 짚어볼 때입니다.
FAQ
31년 된 한옥 목조주택 리모델링 시 가장 강조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부식된 기둥과 주방, 바닥 등 구조적 안전과 편리성이 필요한 부분은 현대적으로 수리하되, 복도 마룻장, 홑문 유리창, 자개농, 닥지 천장 등 유년의 추억과 집의 정체성이 담긴 요소들은 그대로 보존했습니다.
단열 성능이 떨어지는 옛 홑문 창호를 교체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대식 창호로 교체할 경우 30년 동안 유지해 온 집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정서가 훼손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겨울철 한 철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집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자녀들이 부모님에게 집을 절대 팔지 말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 자라며 쌓은 추억과 정서적 기반이 모두 그 집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에게 이 집은 단순히 매매 대상인 부동산이 아니라,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영혼의 고향이자 가족 박물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