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납토성은 아파트 4층 높이에 달하는 판축 토벽으로 둘러싸인 백제 한성기의 유력한 왕성 유적입니다.
- 성 내부 전체가 거대 유적지로 확인되었으나 이미 대규모 주거지가 들어서 있어 전면 매입 대신 권역별 분할 관리 방식을 택했습니다.
- 핵심 유적지는 보존 구역으로 묶고 외곽은 규제를 완화하는 공존 모델을 구축했지만, 보상 지연과 주민 재산권 침해라는 과제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서울 송파구 풍납동의 평범한 아파트 단지 땅 밑에는 백제 한성 시기의 왕성으로 유력한 풍납토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벽 둘레만 3.5km가 넘고 성 안 전체가 3세기 유물로 가득 찬 거대 유적이지만, 이미 수천 세대의 주민이 거주하는 도심 한복판에 자리해 전면 발굴이나 강제 이주가 불가능했습니다. 이에 풍납토성이 택한 해법은 성안을 무조건 비우는 대신 땅을 권역별로 나누어 관리하는 권역별 분할 보존 체계였습니다.
풍납토성의 구조와 역사적 가치: 흙으로 쌓아 올린 11m의 거대 왕성
풍납토성은 고대 백제의 뛰어난 토목 공학 기술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거대한 성곽입니다. 성벽의 밑변 폭은 40~50m에 달하며, 높이는 11m 이상으로 아파트 4층 높이에 육박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거대한 성벽은 흙을 틀에 넣고 켜켜이 다져 올리는 판축(版築) 공법으로 견고하게 쌓았습니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한강 쪽 성벽 일부가 유실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방대한 규모의 성벽이 동네를 감싸고 있습니다. 1963년 국가지정문화재(사적)로 지정될 당시만 해도 성벽 자체만 보존 대상이었기 때문에 성 안쪽에는 자연스럽게 주택과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1997년 아파트 공사 중 발견된 유물들은 이곳이 단순히 성벽만 있는 곳이 아니라 백제 왕성 그 자체였음을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흔한 오해: 성벽만 보호구역이었던 땅, 지하 전체가 왕성이었다
많은 이가 풍납토성을 단순한 외곽 성벽 유적으로만 생각했으나, 1997년 아파트 신축 공사장의 터파기 현장에서 3세기 무렵의 백제 유물과 대형 유적이 쏟아져 나오며 상황은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성벽 안쪽 지하 전체가 백제 한성 도읍기의 핵심 유적지라는 사실이 증명된 것입니다.
유적이 쏟아졌다면 주민을 모두 이주시키고 전면 발굴을 진행하면 되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안에는 이미 12개 동, 4,167가구에 달하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습니다. 수만 명의 주민을 일시에 내보내고 토지를 전부 매입해 보상하려면 조 단위의 천문학적 예산이 필요했고, 보상이 완료될 때까지 주민들은 노후 주택을 수리조차 하지 못하는 극심한 재산권 침해에 직면했습니다.
도심 유적 관리의 역발상: 권역별 분할 보존 방식
치울 수도 없고 덮을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당국은 2015년 발상을 전환했습니다. 성안 전체를 통째로 사들이는 방식을 내려놓고, 토지를 권역별로 세분화해 차등 관리하는 권역별 보존 체계를 도입한 것입니다.
- 1·2권역 (보존 구역): 핵심 유적이 집중적으로 매장된 구역으로, 국가가 부지를 집중 매입하여 발굴 및 역사공원 조성을 추진합니다.
- 3권역 (건축 규제 구역): 유적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신축 건물의 높이와 지하 굴착 깊이를 엄격하게 제한합니다.
- 4·5권역 (관리 및 정비 구역): 상대적으로 유적 잔존 가능성이 낮은 외곽 지역으로, 재건축 및 도시 정비 사업의 길을 열어 주거 환경을 개선합니다.
실제로 외곽 권역에서는 최고 23층, 413가구 규모의 재건축 단지 계획이 수립되는 등 주거 기능 정상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주거지와 유적이 뒤섞인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구역을 나누어 보존과 관리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남겨진 숙제: 사람이 사는 채로 지키는 유적의 현실적 한계
권역별 관리 모델은 문화재 보존과 도심 기능을 절충한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현장의 갈등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보상 대상 세대만 1,700세대가 넘는 가운데 실제 보상 진척도는 전체의 절반을 조금 넘긴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서쪽 성벽은 2017년부터 지속적인 발굴 조사가 이어지고 있으나, 보상 대상 구역에 남은 주민들은 수십 년째 주택 매매나 리모델링이 제한된 채 기약 없는 보상을 기다리는 처지입니다. 풍납토성은 고대 왕성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현대 도시민의 삶을 함께 끌어안아야 하는 문화유산 보존의 가장 복잡한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FAQ
풍납토성은 언제 백제 왕성으로 밝혀졌나요?
1963년 사적 지정 당시에는 성벽 위주로만 관리되었으나, 1997년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3세기 백제 유물이 대거 출토되면서 성 내부 전체가 핵심 왕성 유적지임이 밝혀졌습니다.
성 내부 주민들을 모두 이주시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미 4천 가구가 넘는 고층 아파트 단지와 주택이 형성되어 있어 전면 보상에 수조 원대의 막대한 예산과 장기간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입니다.
풍납토성 권역별 관리 체계의 핵심은 무엇인가요?
핵심 유적이 밀집한 1·2권역은 국가가 매입하여 보존하고, 3권역은 건축 높이를 제한하며, 4·5권역은 재건축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보존과 주거 기능을 분리 관리하는 체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