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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6년 윤심덕의 동반 자살 스캔들과 영화 '아리랑'의 폭발적 흥행은 한국 대중문화 산업이 본격적으로 태동한 결정적 사건입니다.
  • 이러한 대중문화의 급격한 수용 이면에는 서구식 태양력과 시계 보급으로 인한 '근대적 시공간'의 재편이라는 근원적인 변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 권력에 의한 시간 통제와 이에 적응해 가는 대중의 일상이 맞물리며, 영화와 음반이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가 폭발적으로 소비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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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여름, 식민지 조선은 어수선했습니다. 순종의 장례식이 있었고, 끔찍한 수해가 휩쓸고 지나갔으며, 광주 학생운동의 기운까지 감도는 혼란의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시점, 한국 대중문화사를 영원히 바꿔놓은 거대한 흥행 사건이 연달아 터집니다. 대중문화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대중음악과 영화가 본격적인 산업의 형태를 띠며 폭발한 것입니다. 도대체 1926년에 무슨 일이 있었고, 왜 하필 그 시점이었을까요? 이 현상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단순히 스캔들의 자극성을 넘어, 당시 한반도를 덮친 '시간과 공간의 재편'이라는 철학적인 변화를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1926년, 조선을 뒤집어 놓은 두 개의 스캔들


1926년 8월 4일, 동아일보에 엄청난 특종이 뜹니다.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오가던 관부연락선에서 1세대 여성 성악가 윤심덕과 극작가 김우진이 현해탄에 동반 투신했다는 속보였습니다. 유부남이었던 목포 최고 갑부의 아들과 자유분방한 신여성의 정사는 식민지 조선을 발칵 뒤집어 놓았습니다. 한국 대중문화사 100년을 다 털어도 이보다 더 큰 스캔들은 찾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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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철공소닷컴 제공 영상 · 05:08


문제는 사건 보름 뒤에 벌어집니다. 윤심덕이 죽기 직전 취입했다는 음반 '사의 찬미'가 출시된 것입니다. 자살을 염두에 두고 죽음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른 뒤 실제로 목숨을 끊었다는, 일종의 확신범 같은 이 완벽한 시나리오에 대중들은 열광했습니다. 당시 유성기와 음반은 개인이 소유하기엔 턱없이 비싼 사치품이었지만, 이른바 '사의 찬미 센세이셔널리즘'은 한반도에 전례 없는 '묻지마 쇼핑' 광풍을 일으켰습니다. 연일 유성기 품절 사태가 벌어지며, 식민지 한반도에 처음으로 '음반 산업'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영화 '아리랑'의 개봉과 흥행의 시대 개막


윤심덕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인 그해 10월 1일, 종로 단성사에서는 또 다른 역사가 시작됩니다. 춘사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이 개봉한 것입니다. 1919년 무렵부터 본격적인 영화가 상영되기 시작한 이래, 한국인 감독과 작가, 배우가 만든 이 작품은 상상을 초월하는 폭발적인 흥행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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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철공소닷컴 제공 영상 · 15:23


어느 정도였냐면, 밀려드는 관객을 통제하기 위해 경성 경찰청 본청의 기마 경찰대가 매일 투입되어야만 했습니다. 종로 3가에서 동대문까지 일대가 아수라장이 되었죠. 모바일 예매 같은 시스템이 없던 시절이니, 무조건 아침부터 현금을 들고 장사진을 쳤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 영화와 영화 산업의 시대는 바로 이 '아리랑'의 흥행과 함께 막을 올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중문화 폭발의 진짜 동력, '시간'의 재편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1895년에야 탄생한 신상품인 영화와 낯선 서구식 대중음악이, 정치·사회적으로 극도로 불안정했던 식민지 조선에서 어떻게 이토록 순식간에 대중에게 승인될 수 있었을까요? 그 근저에는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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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철공소닷컴 제공 영상 · 23:40


영화와 음악은 본질적으로 시간의 예술입니다. 19세기까지 한반도의 시간은 중국 황제가 내려주는 '시헌력'이나 농경에 맞춘 '만세력'에 의존했습니다.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곧 백성의 시간을 지배한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대한제국 시기 태양력이 도입되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한반도는 철저히 동경 표준시에 입각한 일본의 시간 체제 속으로 강제 편입됩니다. 일본은 낮 12시 정각에 대포를 쏘는 '오포'를 통해 새로운 시간의 기준점을 매일같이 각인시켰습니다. 우리의 시간 감각이 완전히 새롭게 재구성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손목시계, 근대의 시간을 소유하다


이러한 시간의 재편을 개인의 일상으로 끌고 들어온 결정적인 매개체는 바로 '시계'였습니다. 하루를 12개의 '시(時)'로 나누던 삶은 이제 24시간, 그리고 3,600분이라는 정교한 단위로 쪼개졌습니다. 시계의 보급은 사람들의 삶을 분 단위로 기획하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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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철공소닷컴 제공 영상 · 28:28


초기 시계는 대단히 비싼 개인적 사치품이었습니다. 시계를 소유했다는 것은 곧 새롭게 바뀐 제국주의의 시간 체제에 편입되었으며, 그 새로운 시간 단위를 향유할 수 있는 지배 계층에 속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상징이었습니다. 당시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 결혼할 때 신부 측이 신랑에게 시계를 혼수로 선물하는 문화가 생긴 것도, 남편이 이 근대적 체제 안에서 빠르게 출세하기를 바라는 전략적 욕망의 발현이었습니다.


시간의 지배가 만들어낸 대중문화의 토대


결국 근대적인 시간의 약속이 없었다면 대중문화의 흥행도 불가능했습니다. 기차가 정해진 시간에 출발하고, 극장이 정해진 시간에 영화를 상영하며, 대중이 그 시간에 맞춰 모일 수 있는 사회적 약속이 성립되어야만 거대한 흥행 산업이 굴러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식민지라는 뼈아픈 역사를 통해 강제 이식된 근대적 시간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시간의 통제와 규율에 적응해 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영화와 음반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폭발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감각적 토대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1926년의 두 스캔들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에 눈뜬 대중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폭발이었던 셈입니다.


FAQ

1926년 대중문화 흥행을 이끈 두 가지 주요 사건은 무엇인가요?

1926년 8월 발생한 윤심덕과 김우진의 동반 자살 사건 및 직후 발매된 음반 '사의 찬미'의 폭발적 판매, 그리고 같은 해 10월 단성사에서 개봉해 기마 경찰대가 투입될 정도로 흥행한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입니다.

당시 '사의 찬미' 음반이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인가요?

윤심덕이 죽음을 찬미하는 내용의 노래를 취입한 직후 실제로 동반 자살을 실행에 옮겼다는 극적인 서사가 대중에게 엄청난 충격과 호기심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값비싼 유성기를 사면서까지 음반을 듣고자 하는 '묻지마 쇼핑' 광풍이 불었습니다.

대중문화의 빠른 수용에 '근대적 시간 개념'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영화와 음악은 정해진 시간에 상영되고 소비되는 시간의 예술입니다. 서구식 태양력과 24시간, 분 단위의 정교한 시간 체계가 도입되고 대중이 이를 공유하게 되면서, 다수의 사람이 동시에 극장에 모이거나 일정을 맞출 수 있는 사회적 약속이 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일제강점기 초기 '시계'의 소유는 어떤 의미를 가졌나요?

당시 시계는 매우 값비싼 사치품으로, 이를 소유한다는 것은 일본 제국주의가 새롭게 책정한 근대적 시간 체제에 편입되어 그 규칙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지위와 능력을 갖추었음을 증명하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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