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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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바다 앞에서 한 마리 85만 원 고기를 쓸어 담는 배. 한국인은 더이상 배를 안 타려고 한다

spark_icon6분 지식
  • 동해 먼바다 한일 경계선 인근 수심 150m에서 펼쳐지는 대왕문어 통발 조업은 기계로 대체하기 어려운 극한의 수작업입니다.
  •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기상 악화의 위험 탓에 내국인 선원 구인이 어려워지며 외국인 선원의 비중이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 위험과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바다의 질서를 지키며 만선을 꿈꾸는 뱃사람들의 묵묵한 노동이 오늘날 수산물 공급을 지탱합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포항 양포항에서 출항한 23톤급 어선 청경호는 장장 4시간을 달려 한국과 일본의 배타적 경계선 부근에 닻을 내립니다. 이곳에서 선원들이 마주하는 상대는 수심 150m 깊은 바닷속에 몸을 숨긴 거대한 대왕문어입니다. 한 마리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귀한 몸이지만, 이를 건져 올리기 위해서는 거센 파도와 살인적인 노동 강도를 온몸으로 견뎌내야만 합니다.

그런데 풍요로운 만선을 꿈꾸며 출항하는 바다 위 어선의 풍경에는 최근 눈에 띄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청경호에 몸을 실은 선원 6명 중 절반이 중국에서 온 외국인 선원으로 채워진 것입니다. 내국인들이 점차 타기를 꺼리는 어선 조업의 현실 속에서, 대왕문어잡이 배는 국경을 넘어 모인 뱃사람들이 생사를 함께하는 치열한 삶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17시간 연속 노동,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바다의 사투

대왕문어잡이는 겉보기와 달리 자동화가 극히 어려운 대표적인 수작업 어로 활동입니다. 대왕문어는 바위틈 바닥에 서식하기 때문에 어군탐지기에도 쉽게 포착되지 않으며, 오직 선장의 오랜 경험과 감각에 의존해 통발을 내려야 합니다. 2km에 달하는 본줄 하나에 매달린 통발만 무려 예순다섯 개에 이릅니다.

배 위에서 작업복을 입은 선원들이 땀을 흘리며 문어잡이용 통발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

수심 깊은 곳에 숨은 문어를 유인하기 위해 선원들은 쉴 틈 없이 정어리 미끼를 준비합니다.

선원들은 하루에만 약 1,300개의 거대한 통발을 끌어올리고 다시 바다로 던지는 작업을 반복합니다. 통발 자체의 무게만 10kg에 달하며, 물을 머금고 대왕문어가 들어차면 40kg 가까이 불어납니다. 지문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거친 밧줄을 당기고, 통발에 붙은 이끼와 해초를 바닷물로 일일이 씻어내 미끼를 갈아 끼우는 일은 오롯이 사람의 손끝에서 이루어집니다.

모자를 쓴 어부가 갑판 위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인터뷰하고 있으며, 뒤쪽에는 높게 쌓인 통발이 보임

수십 개에 달하는 통발을 일일이 높게 쌓아 올리는 작업은 좁은 배 위에서 결코 쉽지 않은 고된 과정입니다.

새벽부터 시작된 조업은 자정을 넘겨 17시간에서 길게는 20시간 동안 쉴 틈 없이 이어집니다. 바다에서는 흔들림 때문에 작은 실수 하나가 손가락 절단이나 낙상 등 치명적인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습니다.

내국인이 떠난 자리를 메우는 외국인 선원들

이처럼 극심한 피로와 상존하는 사고 위험 탓에 어촌 현장에서는 젊은 내국인 선원을 구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졌습니다. 과거에는 선원 전원이 베테랑 한국인으로 구성되었지만, 이제는 낯선 타국에서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바다로 건너온 외국인 선원들이 조업의 핵심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얼음물 속에 담긴 대왕문어 위에 무게를 표시한 종이가 놓여 있고 우측 상단에 로고가 떠 있는 모습

경매장에 도착한 문어들은 무게를 측정하고 최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차가운 얼음 속에 보관됩니다.

배 위에서의 일은 철저한 분업과 숙련도에 따라 나뉩니다. 처음 배를 탄 선원은 미끼 주머니를 채우는 기초 작업부터 시작하여, 통발 쌓기와 통발 끌어올리기를 거쳐 가장 노련한 기술이 필요한 '줄잡이' 단계로 성장해 갑니다. 국적과 언어는 다르지만, 거친 파도 속에서 수년간 호흡을 맞춰온 선원들은 눈빛만 보아도 통발을 넘겨받고 어창에 문어를 갈무리할 정도로 단단한 팀워크를 발휘합니다.

수산물 경매장에서 중도매인이 손을 들어 가격을 제시하자, 모자를 쓴 경매사가 이를 확인하며 경매를 진행하는 모습이다.

어획량이 늘어나 가격이 하락한 상황에서 경매사가 분주하게 경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바다 위에서 함께 갓 건져 올린 회를 나누고 좁은 선실에서 몸을 부대끼며 쉬는 사이, 이들은 국경을 초월한 한 가족이 되어 고단한 하루를 버텨냅니다.

높은 운영 비용과 자연재해, 어업 현장이 직면한 위기

대왕문어잡이를 위협하는 것은 육체적 피로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조업 경비는 가파르게 치솟고 있습니다. 한 번 출항할 때마다 들어가는 2톤 이상의 유류비는 물론, 미끼로 쓰이는 정어리 한 포대 가격마저 두 배 이상 뛰어올라 출항 자체가 커다란 경제적 모험이 되었습니다.

선상 조종실 안에서 창밖의 바다를 바라보며 운항 중인 선장의 옆모습이 보입니다.

어장 간의 질서를 지키고 효율적인 조업을 위해 선장은 계획한 조업 구역으로 배를 이동시킵니다.

여기에 바다 날씨와 돌발 변수는 언제나 어민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릅니다. 파도가 3m를 넘어서면 통발이 붕괴될 위험 때문에 조업을 중단하고 회항해야 하며, 때로는 바닷속에 설치해 둔 수백만 원 상당의 통발 본줄이 끊어지거나 다른 어선의 그물에 엉키는 사고도 발생합니다.

어두운 밤, 바다 위 선박에서 모자와 작업복을 착용한 선원들이 굵은 밧줄을 잡아당기며 조업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고된 작업은 숙련된 선원들의 땀과 경험으로 쉴 틈 없이 이어집니다.

줄이 끊어지면 칠흑 같은 바다에서 갈고리를 던져 몇 시간씩 통발을 찾아 헤매야 하고, 그렇게 고생해 잡은 문어도 경매장 공급량에 따라 kg당 가격이 급등락하여 어민들의 한숨을 깊게 만듭니다.

바다의 질서를 지키며 만선을 이어가기 위한 과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뱃사람들이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바다는 땀 흘린 만큼 정직한 결실을 돌려주는 삶의 터전이기 때문입니다. 선원들은 300g 미만의 어린 새끼 문어는 반드시 바다로 돌려보내고, 다른 배와의 분쟁을 막기 위해 지정된 좌표와 질서를 지키며 어장을 관리합니다.

동해 깊은 바다에서 묵묵히 통발을 당기는 이들의 노동은 단순한 고기잡이를 넘어, 점차 고령화되고 인력이 줄어드는 우리 어촌 경제의 현실과 구조적 과제를 그대로 비추고 있습니다. 필수적인 수산업 현장의 안전망을 강화하고 안정적인 인력 수급과 어가 유지를 위한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FAQ

대왕문어 조업은 왜 연안이 아닌 먼바다에서 이루어지나요?

대왕문어는 연안에서 잡히는 일반 돌문어와 달리 수심 150m 안팎의 깊고 차가운 해저 바위틈에 서식하기 때문에, 포항 등지에서 4시간 이상 항해하여 한일 경계선 부근 먼바다까지 나가야 조업이 가능합니다.

대왕문어는 큰 것일수록 가격이 더 비싼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경매에서는 5kg 미만의 작은 크기가 제사용 등으로 선호되어 kg당 단가가 가장 높게 형성되며, 10kg 이상의 대형 문어는 kg당 단가가 상대적으로 낮게 책정되기도 합니다.

어선에서 통발을 높게 쌓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 번에 다루는 통발의 개수가 수십 개에서 수백 개에 달하고 갑판 공간이 한정되어 있어 높이 쌓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파도에 통발이 무너질 경우 선원이 다칠 수 있어 매우 주의를 요하는 위험한 작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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